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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셔널 맨 허무, 선택, 파멸

by movie 리뷰 2026. 3. 30.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사진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사진

아무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걸 왜 하고 있지?” 분명 해야 하는 일이고, 책임도 있고,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아는데,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공허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성과를 내고도 별 감흥이 없을 때, 그 감정이 더 크게 올라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도 그 비슷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특이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베라는 인물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그의 선택까지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 출발점이 되는 감정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습니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찾아온다

아베는 단순히 우울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사고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삶의 의미를 계속 따져보고, 그 과정에서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게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결국 뭐지?”, “이 성과가 나한테 어떤 의미지?”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지만, 논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베는 그 상태에 깊이 빠져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무기력이 아니라, ‘합리적인 포기’처럼 느껴지는 상태.

이 지점이 굉장히 섬뜩했습니다.

잘못된 선택이 삶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착각

아베가 판사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구조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이건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 안정적인 상황을 스스로 깨버리는 결정. 회사에서도 갑자기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냥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감정.

아베는 그걸 극단적으로 실행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 그는 살아있는 것처럼 변합니다.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이 가벼워지고, 삶에 활력이 생깁니다.

이 부분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선택이 오히려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순간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오래 가지 않고, 결국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 ‘순간적인 생동감’은 꽤 강력합니다.

아베는 그 함정에 완전히 빠져버린 인물입니다.

합리화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늦었다

아베는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정당화합니다. 부패한 판사를 제거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믿습니다.

이 구조가 굉장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이유를 붙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논리적으로 보일수록, 스스로를 더 쉽게 설득합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봅니다. 무리한 결정을 하면서도 “이게 더 큰 그림에서 맞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경우. 그 논리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무시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아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선택이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더 큰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점 돌아올 수 없는 지점으로 가게 됩니다.

특히 질을 제거하려는 선택은, 이미 선을 완전히 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건 더 이상 철학적인 문제도, 윤리적인 고민도 아닙니다. 그냥 자기 보호를 위한 행동일 뿐입니다.

결국 무너지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로

이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적인 이유는, 거창한 결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치밀하게 계획했던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한 사고 하나로 무너집니다.

이게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회사에서도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예상 못한 변수 하나로 모든 게 꼬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별 기대 안 했던 일이 잘 풀리기도 합니다.

인생이 꼭 논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베는 끝까지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가장 단순한 변수에 무너집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괜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확신이나 논리가, 생각보다 훨씬 취약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큰 교훈을 주는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머릿속을 오래 맴돕니다.

아마 이 영화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쪽에 가까운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불편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O-N82Gaif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