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근 끝에 겨우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 날 밤 '도대체 이게 뭘 위한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보고 나서, 전장에서 느꼈을 그 허무함이 제 회사 경험과 너무 겹쳐 보여서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거창한 명분이 개인의 고통을 덮는 구조
영화 속 독일 병사들은 처음에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자원입대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역사에 남을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품고 참호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은 달랐습니다. 죽은 병사의 군복이 세탁되어 다음 신병에게 다시 지급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군수 물자 절약이 아닙니다. 개인이 얼마나 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연출입니다.
저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실제로 컸습니다. 야근도 기꺼이 했고, 무리한 일정도 팀을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조직이 저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저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요.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진(Burnout) 개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소진이란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신체적 고갈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공식적인 직업 관련 현상으로 분류하고, 이를 관리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출처: WHO:https://www.who.int/news/item/28-05-2019-burn-out-an-occupational-phenomenon-international-classification-of-diseases).
명분이 클수록 개인의 고통은 더 쉽게 묻힙니다. '국가를 위해', '팀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위해'라는 말이 얼마나 강력한 침묵 장치가 되는지,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책임 전가와 결정권자의 거리
파울과 동료들이 참호에서 죽어가는 동안, 지휘부는 안전한 곳에서 작전을 지시합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일부 지휘관은 명예와 전과를 위해 마지막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병사들은 이미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진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가 작동한 것입니다. 매몰비용 오류란 이미 투입된 자원이 아까워서 계속 손해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심리적 편향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프로젝트도 그랬습니다. 실패 가능성이 초반부터 보였고, 담당자들은 계속 위험 신호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결정권자들은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솔직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불안했습니다. 멈추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걸 현장에서는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프로젝트는 별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책임 소재 논의에서 실무자들의 '대응 미흡'이 거론됐습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다음엔 더 철저히 하자"는 말로 넘어갔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 속 지휘관의 모습과 겹쳐 보인 건 저만의 감상이 아닐 겁니다.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귀속 방식을 다룬 연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됩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상당수가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이는 직무 몰입도 저하와 이직 의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https://www.krivet.re.kr).
조직에서 결정과 결과가 분리될 때,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 발생합니다. 구조적 폭력이란 특정 개인의 직접적인 가해 없이도 시스템 자체가 일부 구성원에게 불평등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 병사들이 겪은 것도, 제가 겪은 것도 결국 같은 이름의 문제였습니다.
조직 내에서 이 구조가 반복될 때 나타나는 신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 제기가 반복되지만 결정이 바뀌지 않는다, 실패 후 책임 논의가 실무자 중심으로 수렴된다, 무리한 일정이나 목표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번아웃을 개인의 역량 문제로 귀속시킨다
희생이 미덕이 되는 순간, 무엇이 사라지는가
영화의 결말은 종전 당일 아침 불필요한 공격 명령으로 파울이 전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전쟁은 국경선 하나 바꾸지 못한 채 종료됩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이 사라졌지만 남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 결말이 충격적인 이유는 비극이어서가 아닙니다. 너무 익숙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을 미덕으로 만드는 프레이밍(Framing) 방식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프레이밍이란 동일한 상황을 어떤 언어와 맥락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판단과 행동이 달라지는 심리적 효과를 말합니다. "버텨주면 고맙다"는 말은 희생을 칭찬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지속 불가능한 요구를 정당화하는 장치입니다. 저도 "이번만"이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습니다. 그 말이 반복될 때마다 제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조직을 위한 희생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팀워크와 책임감을 강조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은 조직 운영에 불가결하다고 말합니다. 그 주장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그 논리가 주로 희생을 '받는' 쪽에서 강조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정말 건강한 조직이라면,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그 요구 자체가 타당한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것이 폐허뿐이었듯, 사람을 갈아 넣어 얻은 성과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무너지고 나서야 성과가 공허했다는 걸 깨닫는 조직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구조가 사람을 지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한 번쯤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 사람을 소모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조직에게 던질 수 있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