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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를린에서 (하레디, 탈출, 자유)

by 리뷰잉 라이프 2026. 7. 6.

여자의 얼굴 사진
여자의 얼굴 사진

종교 공동체에서 태어난 것이 과연 선택이었을까요. 넷플릭스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보면서 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하레디 공동체에서 자란 한 여성이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인데,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서 중간에 멈추고 물 한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하레디, 21세기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저는 하레디(Haredi)라는 집단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하레디란 유대교 내에서도 가장 극보수적인 초정통파 분파를 가리키는 말로, 히브리어로 '신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기술과 가치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유대 율법인 토라(Torah)와 탈무드(Talmud)의 규범 안에서만 생활하는 공동체입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이 수백 년 전 생활 방식을 21세기 뉴욕 한복판에서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인공 에스티는 그 안에서 자랐고, 18살이 되자마자 중매를 통해 양키라는 남성과 결혼합니다. 결혼 전 에스티가 거쳐야 했던 신부 수업, 미크바(Mikvah)라고 불리는 정결 의식, 결혼 직후 삭발까지, 하나하나가 낯설고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미크바란 유대 율법에 따라 신체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특별한 물에 온몸을 담그는 의식으로, 결혼이나 안식일 전에 반드시 행하는 종교적 절차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화면 너머로 그 압박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드라마가 더 서늘하게 느껴진 건 이게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Pew Research Center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유대인 인구 중 초정통파(Ultra-Orthodox)는 약 9%로 추산되며, 이들의 출산율은 일반 미국 가정 대비 3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 수를 복원해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감이 여성의 몸을 출산 도구처럼 여기는 문화로 이어진 것인데, 그 현실이 드라마 속 에스티의 삶에 정확히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 하레디 공동체는 외출, 음악 감상, 노래 등 일상적 행동 대부분을 율법으로 제한한다
  • 여성은 결혼 후 다른 남성에게 머리카락을 보이지 않기 위해 삭발을 하고 가발을 착용한다
  • 에스티의 부모는 하레디 규범을 벗어난 이유로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에스티는 부모가 살아있음에도 고아 취급을 받았다
  • 성교육은 초등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고, 결혼 직전 짧은 종교적 교육이 전부였다
요약: 하레디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유대 율법만으로 운영되는 초정통파 공동체로, 에스티의 삶은 그 구조적 억압의 실제 모습을 담고 있다

탈출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습니다

에스티가 베를린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들고 나온 건 서류 몇 장과 작은 가방 하나였습니다. 그 장면이 괜히 민준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섯 살 아이가 빗길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장화도 벗고 차가운 물속에 손을 넣던 순간처럼, 에스티의 행동도 계산된 용기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나온 본능적인 움직임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 둘이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생명이 지금 위험하지 않나?"

베를린에 도착한 에스티는 처음으로 음악을 제대로 듣고, 호수에 몸을 담그며 삭발된 머리를 드러냅니다. 하레디에서는 절대 보여주어선 안 된다고 세뇌된 자신의 몸을 처음으로 자유롭게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닌데도 그 장면에서 가슴이 막혔다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평생 내면화된 수치심과 두려움이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에스티가 오디션에서 선택한 곡은 자신의 결혼식에서 남성들만 불렀던 히브리어 축가였습니다. 그 선택이 너무나 영리하고 아팠습니다. 자신을 억압하던 문화의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되찾는 행위였으니까요. 이처럼 드라마는 개인의 트라우마(Trauma)를 단순히 피해자의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회복의 언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란 개인이 압도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심리적 기능에 장기적인 손상을 입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에스티의 경우 하레디 내부의 구조적 억압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에스티의 어머니 레아였습니다. 레아는 에스티를 버린 나쁜 엄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레디 공동체로부터 딸을 강제로 빼앗긴 피해자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런 구조적 폭력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정직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UN 세계인권선언 제18조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특히 종교를 바꾸거나 떠날 자유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에스티가 겪은 현실은 그 기본권이 공동체 내부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드라마는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냥 줄거리가 아니라, 인물이 내린 선택 하나하나가 자꾸 생각나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양키가 마지막에 하레디의 상징인 수염을 스스로 자르며 에스티에게 달라지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 나름의 진심이 느껴지면서도 너무 늦었다는 것도 함께 보여줘서 씁쓸했습니다.

요약: 에스티의 탈출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억압된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이었으며, 드라마는 그 회복의 서사를 구조적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종교나 공동체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틀이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에스티를 보면서 민준이가 달팽이를 화단으로 옮기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그 아이도, 에스티도, 결국 같은 말을 했던 셈입니다. 이 존재는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고.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정직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1화 초반 에스티가 마트에서 미소를 유지하며 평가받는 장면부터 천천히 보시길 권합니다. 그 한 장면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Bxe97KKw3s